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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④] 시골에서 만난 우리카지노 소중한 '언니'들
[오마이뉴스 글:김진회,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우리계열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우리카지노사이트 들려주세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 거라 생각하던 루비바둑이 시골소년이 서울의 삶을 두고 다시 시골로 갔습니다. 소유의 땅도 집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강원도 홍천에서 짝꿍과 함께 자연농과 시골살이를 배우고 개츠비카지노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고 방황하는 젊은 부부의 작고 솔직한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밭에 가는 길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밭에 뭘 심었냐고 물으시기에 그냥 우리 먹을 거나 이것저것 조금씩 심었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러고 있지!"
"예?"
너무 뜻밖의 말씀이라 처음엔 정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동네 토박이 주민들과 이야기 나눌 일이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집과 밭이 멀어서다. 밭이 있는 고음실마을에 집을 구해 살았더라면 아마 할머니들도 매일 마주치고 집 마당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사는 집은 밭에서 2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데다 군부대 앞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있는 거리에 있다. 지나가다가도 마당이 훤히 보이는 열려있는 시골 농가 주택이 가까운 곳엔 하나도 없다.
게다가 우리 밭은 골짜기 제일 안쪽에 있다. 동네 가운데 즈음에 있는 밭이라면 사람들이 오며 가며 말도 많이 걸었을 법한데, 맨 끝에 있는 밭에서 조용히 일하니 거기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갈 때나 지나는 곳이다.
짝꿍이 학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할머니 댁 김장을 도우러 갔던 지난 11월에 처음으로 인사를 넘어선 대화를 나누었다. 12월엔 계추라고 하는 마을 전체회의에 가서 드디어 우리 부부를 소개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동네에 집이나 땅을 산 것도 아니고, 옆 동네 원룸에 살면서 골짜기 끝 밭에만 왔다 갔다 하는 우리가 마을 분들이 느끼기에는 베일에 싸인 존재일 것이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할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됐다. 일단 우리가 평일 낮에 어슬렁거리며 밭에 다니는 걸 보셨으니 둘 다 주 5일제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아셨을 거다. 그렇다면 농사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데,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오신 그분들은 척 보면 우리 밭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신다.
사실 여기선 우리가 감히 '농사를 짓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집에 돈이 많은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나로서는 차가 없어 자전거 타고 다니고, 집도 땅도 없어 월세 내고 원룸에 사는 우리가 그런 오해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이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오해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릴 안 좋게 보시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냥 예쁘게 보며 뭐라도 알려주고 도와주려 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돈 많은 젊은이들이라고 믿고 있는 할머니께서도 언젠가 길에서 인사드렸더니 들고 있던 커다란 가지를 대뜸 주셔서 당황하며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겨울에는 '그 밭(우리 밭)에서 무슨 김장할 게 나오겠냐'며 이집 저집에서 김치도 꽤 많이 주셨다. 11월에 얻었으니 벌써 반년째 그 김치를 먹고 있다.
시골에서 만난 소중한 '언니'들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이웃은 시동리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곳에 오래 살다가 돌아오신 개구리, 소금쟁이님 가족과 우리보다 좀 더 일찍 귀촌한 모래무지, 무당벌레님 가족,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도토리 등이다.
논밭이 같은 고래실('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을 뜻하는 말) 골짜기 안쪽에 있는 데다 자연농을 배우고 실천하고 싶다는 비슷한 바람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다. 매주 모여서 한 주간 있던 일들을 나누고 함께 논밭도 둘러본다. 이 과정에서 농사에 대한 공부도 하고 도움도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때문에 내 삶을 지지받고 응원받는 기분이다.
시동리, 고래실 골짜기의 이웃들이 다가 아니다. 옆 동네인 유치리에는 '언니네텃밭' 생산자 공동체가 있다. 서울에 살 때 '언니네텃밭'의 소비자 회원으로 가입해 매주 맛있는 꾸러미를 받아먹었다. 그때 전국 여러 공동체 가운데 배정받은 곳이 우연히 '홍천 시동공동체'였다. 이사를 와보니 마침 우리에게 꾸러미를 보내주던 공동체의 작업장이 바로 옆에 있기에 마지막 꾸러미도 받고 감사 인사도 드리러 갔다. 갔더니 우리만큼이나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시면서 점심밥도 주시고 꾸러미 일손을 돕는 일도 제안해주셨다.
그렇게 서울에서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내고 받았던 두부와 달걀, 제철 채소와 반찬들을 이제는 매주 화요일마다 서너 시간 정도 꾸러미 싸는 일을 도와드리고 얻어먹게 됐다. 언니네텃밭 덕에 우리 밭에서 당장 뭐가 안 나와도 제철 채소를 잘 먹고 산다. 짝꿍과는 언니네에서 맨날 얻어먹으니 우리가 농사를 필사적으로 안 짓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점심밥도 얻어먹고 돈도 받고 먹을 것도 받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전국여성농민회 활동, 식량주권이나 토종씨앗, 농민들의 현실과 농업정책, 농사법에 대해서도 듣고 배우는 게 많다.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문화도 엿보고 동네의 행사나 일자리 등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재밌는 일이다. 언니네텃밭 공동체에서는 모두 서로를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다 보니 얼떨결에 나도 다 큰딸, 아들이 있는 농부님께 언니, 언니 하게 됐다.
여기 와서 지금까지 만난 이웃들을 둘러보니 텃세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다. 홍천은 서울과 상당히 가까워 그런지 최근에도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이 많아 마을에 소위 '외지인'도 많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더 냉정하게 보자면 텃세가 어찌 없으랴. 사실 우리는 본격적으로 땅을 사서 다른 주민과 땅 경계를 맞대고 산다거나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텃세라는 울타리에 닿아보지도 못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수밖에
최근에도 마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도시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을발전기금을 내라고 해서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런 마을발전기금이야 너무 과도한 액수만 아니라면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공동의 재산을 조금씩 내놓아 마을 안쪽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거나 해왔던 것들을 생각하며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더한 일도 많다.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는데 단지 외지인이란 이유만으로 그 땅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막무가내식 반대를 당했다는 분도 계셨다. 다행히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조용히 그때 일을 사과했단다.
또 시골에는 동성동본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들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다. 옆 동네 한 농부님 말씀을 들으니 벌써 그 동네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도 똑같은 부탁을 친척 관계인 사람의 것만 들어준다거나 하는 일이 다 없어지지 않았단다. 알면 알수록 내가 감히 시골의 텃세에 관해 무어라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란 생각이 많이 든다.
뭐니 뭐니 해도 일상의 질을 높이는데 사람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다. 우리는 좋은 이웃이 많아서 좋지만, 그래도 역시 시골 와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친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나도 그렇고 짝꿍도 그렇고 매달 몇 번씩은 양평으로, 서울로, 심지어 해남으로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하러 다니곤 한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귀농 귀촌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외롭다는 이야기가 참 많다. 가능하다면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와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최고다. 그게 어렵다면 어찌 되었든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먼저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부디 나부터
인생에는 적극적인 의미의 즐거움, 행복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과 권태가 있을 뿐이다. 파티와 구경거리와 흥분되는 일들로 가득차 보이는 세상살이도 그 이면의 실상을 알고 보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단조로운 시계추의 운동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세상의 사이비 강단 철학자들은 인생에 진정한 행복과 희망과 가치와 보람이 있는 것처럼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나의 철학은 그러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가르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인생에는 다만 고통이 있을 뿐이다. 가능한 한 그러한 고통을 피해가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예지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일시적 부재인 소극적 의미의 행복만이 인생에 주어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이고, 현자의 도리는 바로 그러한 소극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글:김진회,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우리계열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우리카지노사이트 들려주세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 거라 생각하던 루비바둑이 시골소년이 서울의 삶을 두고 다시 시골로 갔습니다. 소유의 땅도 집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강원도 홍천에서 짝꿍과 함께 자연농과 시골살이를 배우고 개츠비카지노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고 방황하는 젊은 부부의 작고 솔직한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마을길 할머니와 가장 자주 마주치고 종종 대화도 나누는 마을 지름길 |
ⓒ 김진회 |
얼마 전 밭에 가는 길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밭에 뭘 심었냐고 물으시기에 그냥 우리 먹을 거나 이것저것 조금씩 심었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러고 있지!"
"예?"
너무 뜻밖의 말씀이라 처음엔 정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동네 토박이 주민들과 이야기 나눌 일이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집과 밭이 멀어서다. 밭이 있는 고음실마을에 집을 구해 살았더라면 아마 할머니들도 매일 마주치고 집 마당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사는 집은 밭에서 2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데다 군부대 앞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있는 거리에 있다. 지나가다가도 마당이 훤히 보이는 열려있는 시골 농가 주택이 가까운 곳엔 하나도 없다.
게다가 우리 밭은 골짜기 제일 안쪽에 있다. 동네 가운데 즈음에 있는 밭이라면 사람들이 오며 가며 말도 많이 걸었을 법한데, 맨 끝에 있는 밭에서 조용히 일하니 거기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갈 때나 지나는 곳이다.
짝꿍이 학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할머니 댁 김장을 도우러 갔던 지난 11월에 처음으로 인사를 넘어선 대화를 나누었다. 12월엔 계추라고 하는 마을 전체회의에 가서 드디어 우리 부부를 소개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동네에 집이나 땅을 산 것도 아니고, 옆 동네 원룸에 살면서 골짜기 끝 밭에만 왔다 갔다 하는 우리가 마을 분들이 느끼기에는 베일에 싸인 존재일 것이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할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됐다. 일단 우리가 평일 낮에 어슬렁거리며 밭에 다니는 걸 보셨으니 둘 다 주 5일제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아셨을 거다. 그렇다면 농사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데,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오신 그분들은 척 보면 우리 밭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신다.
사실 여기선 우리가 감히 '농사를 짓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집에 돈이 많은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나로서는 차가 없어 자전거 타고 다니고, 집도 땅도 없어 월세 내고 원룸에 사는 우리가 그런 오해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이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오해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릴 안 좋게 보시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냥 예쁘게 보며 뭐라도 알려주고 도와주려 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돈 많은 젊은이들이라고 믿고 있는 할머니께서도 언젠가 길에서 인사드렸더니 들고 있던 커다란 가지를 대뜸 주셔서 당황하며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겨울에는 '그 밭(우리 밭)에서 무슨 김장할 게 나오겠냐'며 이집 저집에서 김치도 꽤 많이 주셨다. 11월에 얻었으니 벌써 반년째 그 김치를 먹고 있다.
▲ 지구학교 원두막 고래실 골짜기 사람들이 늘 모임을 갖는, 개구리님 밭에 있는 원두막 |
ⓒ 이파람 |
시골에서 만난 소중한 '언니'들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이웃은 시동리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곳에 오래 살다가 돌아오신 개구리, 소금쟁이님 가족과 우리보다 좀 더 일찍 귀촌한 모래무지, 무당벌레님 가족,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도토리 등이다.
논밭이 같은 고래실('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을 뜻하는 말) 골짜기 안쪽에 있는 데다 자연농을 배우고 실천하고 싶다는 비슷한 바람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다. 매주 모여서 한 주간 있던 일들을 나누고 함께 논밭도 둘러본다. 이 과정에서 농사에 대한 공부도 하고 도움도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때문에 내 삶을 지지받고 응원받는 기분이다.
시동리, 고래실 골짜기의 이웃들이 다가 아니다. 옆 동네인 유치리에는 '언니네텃밭' 생산자 공동체가 있다. 서울에 살 때 '언니네텃밭'의 소비자 회원으로 가입해 매주 맛있는 꾸러미를 받아먹었다. 그때 전국 여러 공동체 가운데 배정받은 곳이 우연히 '홍천 시동공동체'였다. 이사를 와보니 마침 우리에게 꾸러미를 보내주던 공동체의 작업장이 바로 옆에 있기에 마지막 꾸러미도 받고 감사 인사도 드리러 갔다. 갔더니 우리만큼이나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시면서 점심밥도 주시고 꾸러미 일손을 돕는 일도 제안해주셨다.
▲ 언니네텃밭 작업장 우리를 늘 반겨주시는 언니네텃밭 |
ⓒ 김진회 |
그렇게 서울에서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내고 받았던 두부와 달걀, 제철 채소와 반찬들을 이제는 매주 화요일마다 서너 시간 정도 꾸러미 싸는 일을 도와드리고 얻어먹게 됐다. 언니네텃밭 덕에 우리 밭에서 당장 뭐가 안 나와도 제철 채소를 잘 먹고 산다. 짝꿍과는 언니네에서 맨날 얻어먹으니 우리가 농사를 필사적으로 안 짓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점심밥도 얻어먹고 돈도 받고 먹을 것도 받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전국여성농민회 활동, 식량주권이나 토종씨앗, 농민들의 현실과 농업정책, 농사법에 대해서도 듣고 배우는 게 많다.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문화도 엿보고 동네의 행사나 일자리 등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재밌는 일이다. 언니네텃밭 공동체에서는 모두 서로를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다 보니 얼떨결에 나도 다 큰딸, 아들이 있는 농부님께 언니, 언니 하게 됐다.
여기 와서 지금까지 만난 이웃들을 둘러보니 텃세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다. 홍천은 서울과 상당히 가까워 그런지 최근에도 귀농 귀촌하시는 분들이 많아 마을에 소위 '외지인'도 많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더 냉정하게 보자면 텃세가 어찌 없으랴. 사실 우리는 본격적으로 땅을 사서 다른 주민과 땅 경계를 맞대고 산다거나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텃세라는 울타리에 닿아보지도 못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수밖에
최근에도 마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도시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을발전기금을 내라고 해서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런 마을발전기금이야 너무 과도한 액수만 아니라면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공동의 재산을 조금씩 내놓아 마을 안쪽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거나 해왔던 것들을 생각하며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더한 일도 많다.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는데 단지 외지인이란 이유만으로 그 땅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막무가내식 반대를 당했다는 분도 계셨다. 다행히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조용히 그때 일을 사과했단다.
또 시골에는 동성동본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들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다. 옆 동네 한 농부님 말씀을 들으니 벌써 그 동네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도 똑같은 부탁을 친척 관계인 사람의 것만 들어준다거나 하는 일이 다 없어지지 않았단다. 알면 알수록 내가 감히 시골의 텃세에 관해 무어라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란 생각이 많이 든다.
뭐니 뭐니 해도 일상의 질을 높이는데 사람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다. 우리는 좋은 이웃이 많아서 좋지만, 그래도 역시 시골 와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친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나도 그렇고 짝꿍도 그렇고 매달 몇 번씩은 양평으로, 서울로, 심지어 해남으로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하러 다니곤 한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귀농 귀촌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외롭다는 이야기가 참 많다. 가능하다면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와 좋은 이웃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최고다. 그게 어렵다면 어찌 되었든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먼저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부디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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